경제는 32% 커지는데 일해서 버는 몫은 45%로 밀린다
앤트로픽, 2030년 미국 경제 세 갈래 모델 공개 / 극단 시나리오에서 노동소득 몫 59.4%→45.2% / 지식노동 임금 10% 넘게 하락
경제가 커지는데 일해서 버는 몫은 줄어든다. 앤트로픽이 9월 10일 공개한 2030년 미국 경제 모델에서 세 갈래 모두 방향이 같았다. 갈림의 폭만 다르다.
가장 센 시나리오에서 미국 GDP는 44조4,000억달러가 된다. AI가 없었을 경우보다 32.4% 크다. 같은 시나리오에서 노동소득 몫은 45.2%까지 내려간다. 완만한 경로의 59.4%와 견주면 14.2%포인트 차이다.
| 시나리오 | 2030년 GDP | 기준선 대비 | 노동소득 몫 | 자본 몫 변화 |
|---|---|---|---|---|
| 완만 | 34.1조달러 | +1.6% | 59.4% | +0.6%p |
| 상당 | 36.3조달러 | +8.3% | 56.1% | +3.9%p |
| 극단 | 44.4조달러 | +32.4% | 45.2% | +14.8%p |
세 수치에서 AI가 없는 경로를 역산하면 모두 33.5조달러 안팎으로 모인다. 34.1÷1.016, 36.3÷1.083, 44.4÷1.324가 각각 33.56·33.52·33.53이다. 같은 출발점에서 갈라지는 세 갈래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이 쪼개진다
모델의 뼈대는 직업이 아니라 과업(task)이다. 하나의 직업을 여러 과업의 묶음으로 보고, AI가 각 과업을 그대로 두는지·거드는지·대신하는지·새로 만드는지를 따진 뒤 경제 전체로 더한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AI가 회계사를 없앤다」가 아니라 「회계사가 하는 스무 가지 일 중 열두 가지를 AI가 한다」로 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직업은 남지만 그 직업의 값이 달라진다.
시나리오별로 갈리는 지점은 얼마나 많은 지식노동 과업을 AI가 맡는가다.
- 완만 — 인터넷이 경제에 준 정도의 충격. 임금은 직종 전반에서 조금씩 오른다
- 상당 — AI가 2030년까지 지식노동의 절반을 할 수 있게 된다. 지식노동자 임금은 사실상 제자리, 나머지 직종은 오른다
- 극단 — 대부분의 지식노동 과업에서 AI가 사람보다 생산적이고 거의 전부를 스스로 처리한다. 지식노동 임금은 10% 넘게 내린다
극단 경로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앤트로픽은 이 경로가 스스로 개선하는 시스템과 빠른 도입을 전제로 한다고 적었다. 기술만으로는 도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늘어난 몫이 어디로 가는가
이 모델에서 읽을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분배다.
노동소득 몫은 국민소득 가운데 임금·급여로 가는 비율이다. 나머지가 자본의 몫이다. 완만 경로에서 자본의 몫은 0.6%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치지만, 극단 경로에서는 14.8%포인트 늘어난다.
경제가 32.4% 커지는데 노동의 몫이 59.4%에서 45.2%로 내려가면, 파이가 커져도 일해서 받는 쪽이 가져가는 절대액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파이의 크기와 자기 몫의 크기는 다른 문제다.
여기에 실업이 겹친다. 상당 경로의 전체 실업률은 5% 안팎으로 통상 범위 안이다. 극단 경로에서는 통상적인 불황 수준을 넘어선다.
지식노동자만 손해를 보는 구조다
같은 시나리오 안에서도 직종에 따라 방향이 갈린다.
상당 경로에서 지식노동자 임금은 사실상 제자리인데, 지식노동이 아닌 직종은 오른다. AI가 지식노동 과업을 대신하면서 생산성이 올라가고, 그 과실이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손으로 하는 일, 몸으로 하는 일,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여기 들어간다.
극단 경로에서는 지식노동 임금이 10% 넘게 내린다. 전체 실업률도 통상적인 불황 수준을 넘어선다. 다만 이 경로에서도 지식노동 아닌 직종이 지식노동보다 낫다는 구도는 유지된다. 모델에 고성능 로봇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입시를 뚫고 지식노동자가 되는 경로가 가장 안전하다는 전제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한국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고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목표로 교육이 짜인 나라에서 이 대목은 미국보다 크게 걸린다.
한국은 이 전환의 공급자 쪽에 서 있다
여기서 한국 경제와 이어진다.
AI가 경제를 바꾸려면 먼저 반도체가 필요하다. 9월 1~10일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47%였고, 6월 월간 수출은 1,005억6,000만달러로 1957년 통계 시작 이후 처음 1,000억달러를 넘었다. 무역수지 334억9,000만달러도 69년 사상 최대다.
지금 한국 경제를 밀어 올리는 수요가 바로 이 모델이 말하는 전환의 앞단이다. AI를 만들려는 투자가 반도체 수요가 되고, 그 수요가 한국 수출로 나타난다.
그런데 같은 전환의 뒷단에서는 지식노동의 값이 내려간다.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높고 지식노동 비중이 큰 나라다. 전환의 앞단에서 벌고 뒷단에서 잃는 구조가 된다.
앤트로픽 모델은 미국 경제만 다룬다. 한국의 노동소득 몫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이 모델에 없다. 다만 반도체가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이 전환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모델이 답하지 않는 것
앤트로픽은 모델의 한계를 함께 적었다.
- 정책 대응이 빠져 있다. 과세·재분배·규제가 들어가면 분배 결과는 달라진다
- 경기 순환이 빠져 있다. 불황과 회복의 주기를 모델에 넣지 않았다
- 파국적 위험이 빠져 있다. 최악의 경우는 계산 대상이 아니다
- 개별 노동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누가 직업을 옮기고 누가 못 옮기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 고성능 로봇이 빠져 있다. 물리적 노동의 대체는 다루지 않는다
앞의 세 가지가 특히 크다. 정책이 빠진 모델에서 분배가 나빠진다는 결과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 아니다.
확인은 언제 되는가
세 갈래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 지식노동 과업의 실제 대체 속도다. 상당과 극단을 가르는 것은 「절반」과 「거의 전부」의 차이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도입의 문제다.
둘째, 노동소득 몫이다. 미국 노동소득 몫은 분기마다 공표된다. 지금 60% 언저리에서 56%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상당 경로에 들어선 것이고, 50% 아래로 향하면 극단 경로다. 성장률보다 이 한 줄을 보는 편이 빠르다.
경로를 되돌릴 장치는 모델 밖에 있다. 과세와 재분배, 교육과 재훈련, 그리고 AI 도입 속도를 정하는 규제다. 모델이 이것들을 빼고 계산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자료의 쓰임새를 정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다.
2030년까지 남은 것은 네 해다. 앤트로픽은 이를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라고 부른다. 예측은 하나지만 시나리오는 여럿이고, 여럿 가운데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